스위치온 김난희 대표
그 어느 때보다 빠른 기술 발전과 급격한 사회 변화 속에서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 특히 청년들은 요구받는 것이 많다. 더 부지런하고, 더 노력해야 한다. 동시에 새로운 도전과 기회도 잡을 수 있다.
4차 산업혁명의 물결 속에서 디지털 기술과 인공지능의 발전으로 우리의 삶과 일하는 방식은 근본적으로 변화하고 있으며, 신자유주의는 더 깊이 개개인의 삶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러한 시대적 배경 속에서 청년 세대는 ‘어떻게 살 것인가?’ 또는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라는 화두를 마치 DNA처럼 탑재한 채 때로는 희망적으로, 때로는 불안감에 살고 있는지 모르겠다.
이 책은 지금 이 순간, 내가 있는 바로 이곳에서 청년정신을 갖춘 사람으로 살아가는 이야기를 담고자 했다. 사례 하나하나마다 직관적으로 시대정신을 감지하며, ‘사회적 가치’를 추구하는 데에 자신의 선택과 가치를 두는 청년들을 만날 수 있다. 그러나 그런 삶을 살아가는 선택을 모두 청년 개개인의 몫으로 돌리고 싶지 않다. 삶의 가치에 대한 고민과 고민 이후의 결정과 실천은 개인의 몫일지라도, 그럴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의 여유를 마련해 두는 것은 공동체의 몫이다.
여하튼, 개인적인 삶과 사회적인 삶에서 자신의 ‘자유의지’를 향유하는 청년들이 많아지기를 바란다. 다양한 경우 속에서 선택을 하고, 생각에만 그치지 않고 그리 살아가 보기를 바란다. 그런 바람과 지지를 담아 영감과 자극이 될 만한 사례들을 엮었다. .
청년이 원하는 것? ‘청년정신’
그런데 편리하게 원하는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세상의 환경과 그런 관계를 실제로 맺으며 살아가는 것 사이에는 격차가 있어 보인다. 사단법인 오늘은이 연구한 ‘2024 청년세대 관계실조 보고서’에 따르면 청년들은 가장 필요로 한 관계로 ‘심리적 안정감을 느끼는 관계’를 1순위로(응답자의 46.8%) 뽑았다.
이 보고서는 우리 사회가 SNS의 발달로 관계를 맺기에 용이한 여건이 되었지만, 현실적인 청년의 삶은 관계 맺기에 대한 결핍이 크다는 것을 보여 준다. 청년들은 ‘있는 그대로의 나로 존재’하면서 ‘사람들과의 안정적인 관계’ 속에 머무는 것에 대한 욕구가 크다.
동시에 이 보고서에서는 ‘연대와 실천을 통해 더 나은 사회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는 청년이 절반이 넘음(52.8%)을 보여준다.
이 책자를 만들면서 만난 청년들은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연대하고 실천을 살아가고 있었고, 그 덕분에 더 나은 사회는 만들어지고 있었다.
또한 관심있게 볼 점은 그 활동에 ’자원봉사‘라는 이름을 굳이 붙일 생각을 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그저 재미있게 관계를 맺고, 의미있게 사회적으로 가치있는 일에 참여하고, 삶을 즐기는 것에 인간다운 살아 있음을 느끼는 보였다. 사단법인 시민이 2023년도에 연구한 ‘한국 청년층의 시민사회 공익활동 현황 조사’에서도 공익활동에 임하는 젊은 세대의 태도가 ‘봉사와 사회적 활동을 자신의 정체성을 이루는 중요한 부분으로 규정하고, 사람들이 즐겁고 쉽게 활동에 동참할 수 있도록 활동을 만들어 가고 있었다’고 서술하고 있다. 그러면서 ‘사회적 활동이 더 이상 어렵고 힘든 것이 아니라 즐길 수 있는 영역으로 인식되어 가고 있다’는 해석을 한다(‘한국 청년층의 시민사회 공익활동 현황 조사’, 조철민 외, 사단법인 시민, 2023).
이 시대가 원하는 것? ‘시대정신’
지금의 시대를 이야기할 때 4차 산업혁명 시대라는 말을 빼놓을 수 없다. 더 나아가 포스트 휴먼(Post-Human)과 트랜스 휴먼(Trans-Human) 시대라는 용어도 자주 듣는다. 기술과 인간의 융합이 가속화되는 가운데, ’인간다움‘이 무엇인지, 우리의 정체성에 대한 물음을 던져야 할 때이다.
4차 산업혁명으로 휴머노이드 로봇은 인간의 역할을 대체하고 있다. 자원봉사는 어떨까? ’아직까지‘ 자원봉사는 휴머노이드 로봇이나 AI가 침범하지 않고 있는 인간만의 영역이다. 자원봉사를 뜻하는 영어단어 ‘Volunteer’는 라틴어 ‘Voluntas’에서 유래되었다. 이는 ‘몸소 하고자 하는 마음’, 즉 '자유의지'를 의미한다. 비록 AI가 인간의 노동과 역할의 많은 부분을 대체할지라도, 자신의 자유의지에 의해 타자나 공동체를 위한 행동을 선택하지는 못한다(물론 여기에 강력히 ‘아직까지는’이라는 전제를 붙인다.) 사람보다 더 나은 서비스를 제공할지라도 휴머노이드 로봇은 인간이 만들어낸 명령체계에 의해 움직이는 존재이다. 그러니 4차 산업혁명의 시대에 자원봉사는 단순히 사회에 필요한 서비스를 무급으로 제공하는 행위라는 식의 결과물을 덤덤히 서술을 하는 것에 그쳐서는 안 된다. 행위의 산출물을 서술하는 것을 넘어, 개인의 의지와 선택에서 비롯된 공동체와 타자에 대한 자신의 가치관을 반영한, 한 인간의 자발적 실천이라는 측면에서 그 과정과 결과를 바라보고 해석해야 한다.
4차 산업혁명과 함께 이 시대를 표현하는 말이 ‘신자유주의’이다. 지금의 청년들이 태어나기도 전부터 우리 사회에 떡 하니 자리잡고 있는 신자유주의는 청년들을 포함하여 인간에게 선택의 폭을 축소시켰다. 돈벌이와 효율성에 가치를 두는 사회에서 타자를 생각하고 사회적 가치를 선택하기란 힘들다. 그런데 자원봉사는 어떠한가? 금전적인 대가도 없는 일에 자신의 시간과 힘을 쏟는다. 자본주의적 관점에서는 참으로 생산적이지 못하다.
그런데 사단법인 시민의 ‘한국 청년층의 시민사회 공익활동 현황 조사’ 보고서는 ‘청년들은 사회문제를 해결하고 사회를 바꿀 수 있다면 기꺼이 기업 창업을 선택하기도 한다. 기업의 수익 추구와 공익활동의 가치 추구가 양립할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고 싶은 청년들에게는 그 경계가 그리 중요하지 않아 보인다’고 말한다. 심지어 더 나아가 ‘창업을 통한 사회문제 해결 역시 청년 세대 공익활동의 새로움’이라고 말하고 있다(‘한국 청년층의 시민사회 공익활동 현황 조사’, 조철민 외, 사단법인 시민, 2023).
이렇게 청년들은 4차 산업 혁명의 시대, 그리고 신자유주의의 한 복판에서 자신의 인간된 삶, 주인된 삶에 대해 캐묻고 답하며 살아가고 있다.
‘사람들 사이에 존재’하는 경험
‘인간다운 삶은 과연 어떻게 사는 것인가?’ 철학적인 질문의 답을 찾는데 ‘2024 청년세대 관계실조 보고서’는 좋은 힌트가 된다. 현대 청년들은 알고리즘에 의해 형성된 디지털 환경 속에서 인간관계에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한 물리적 고립을 경험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은 청년들이 진정한 인간관계와 소통을 갈망하고 있음을 보여준다(‘2024 청년세대 관계실조 보고서’, 심다솜 외, 사단법인 오늘은, 2024). 청년세대의 이런 욕구로부터 답을 찾는 다면 인간다운 삶은 고립이 아니라 연결임을 알 수 있다.
한나 아렌트는 그의 저서 ‘인간의 조건’에서 로마인의 언어를 통해 인간의 살아있음에 대해 표현하고 있다. ‘로마인의 언어에서 살다는 사람들 사이에 존재하다(inter homines esse )이고, 죽다는 더 이상 사람들 사이에 존재하지 않는다(inter homines esse desinere)이다’. ‘사람들 사이에 존재하기’가 바로 인간으로 살아가기인 것이다.
사단법인 시민의 보고서는 다수의 사례를 통해 ‘청년층 공익활동의 출발점이 커뮤니티’였음을 발견했다. 커뮤니티 경험을 해 본 청년들, 즉 사람들 사이에 있어 본 청년들의 사회적 가치, 공익적 가치를 실현하고자 하는 동기가 강화되었다. 그리고 사회적 가치를 실천하는 경험을 하다 보면 공익활동의 내용과 범위는 계속 확장된다. 지금의 우리 사회에 공익활동을 하면서 사람들 사이에 존재하는 청년들이 시대에 많기를 바란다.
사람들 사이에서 존재하되, 어떤 방식으로 존재할 것인지는 각자의 스타일에 따르면 된다. 획일적일 필요는 없다. 각자 궁리하고 다양한 방식으로 자신의 존재방식을 마음껏 표출하면 좋겠다. 지금 당장 5초라도 시간을 내어 거리의 쓰레기를 줍고, 10분이라도 시간을 내어 고독한 누군가와 통화를 한다면 이것이 바로 나도 사람들 사이에 존재하고, 나로 인해 타자도 사람들 사이에 존재케 하는 방법이다. 이것을 ‘자원봉사’라 불러도 좋고, ‘공익활동’이라 불러도 좋고, ‘사람 사이에 존재하기’라고 표현해도 좋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 행위를 자신이 직접, 실제로 해보는 것이다.
시간인증을 넘는 활동의 확장
손쉬운 일상의 실천에서 부터 작정하고 고민해서 만든 프로젝트의 실천까지 무엇이든 상상하고 실천해 보자. 그러다 막상 무언가를 하고자 하는데 막연하다는 생각이 들땐, 이 책을 쓰윽 훑어 봐도 좋겠다. 책에 담긴 다양한 사례를 통해 사람들 사이에서 잘 살고 있는, 진정으로 살아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만날 수 있다. 관심가는 활동들을 혼자서 따라하거나, 소개된 단체에 연락을 해서 함께 할 수도 있다.
1365사이트에 등록되어 있는 활동만이 자원봉사는 아니다. 그리고 활동을 하고 난 뒤 반드시 시간인증을 받아야만 하는 것도 아니다. 자원봉사라는 것은 본디 공익적 가치를 만드는 자신의 ‘자발적인’ 행위인지라 누군가에게 인증을 받고 허락을 받아야 하는 행위가 아닌 것이다.
그동안 자원봉사를 ‘1365포털의 시간인증’을 받는 활동으로만 바라봤다면 그 틀을 깨고 넓은 자원봉사의 바다에서 활기차게 자유의지를 펼쳐 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