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는 글
니트생활자 박은미 대표
기본적인 너무나도 기본적인,
그래서 외면해 왔던
'본질'과 만나다
날씨가 관측된 이래 이렇게 더운 여름은 없었다며 연일 뉴스에서 날씨이야기가 이어지고, 하루하루 수은주가 최고기온을 갱신하던 2024년의 8월, 한여름의 한낮에 ‘사단법인 니트생활자’ 박은미대표를 만났다.
‘사단법인 니트생활자(https://neetpeople.kr/)’는 니트족을 위한, 니트족에 의한, 니트족의 커뮤니티 플랫폼이다. 니트족은 ‘Not in Education, Employment or Training’의 약자로 ‘직장에 다니는 것도 아니고 교육이나 훈련을 받는 상태도 아닌 젊은이’를 의미한다(출처: 옥스퍼드 영한사전). ‘니트생활자’라는 사단법인을 만든 박은미대표 역시 니트족이었다. 한때는 니트족 당사자로서, 그리고 지금은 니트족의 벗으로서 청년들이 함께 여러 가지 작당을 모의할 수 있는 판을 만들며 살고 있다.
박은미대표와의 대화로 이 시대를 살아가는 청년들이 ‘자발적인’ 관계맺기와 연대, ‘자발적인’ 사회 참여에 얼마나 진심인지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진심을 북돋우고 실현하는 것이 참으로 당연한 인간의 삶의 방식임에도 불구하고 ‘여러 가지 이유로’ 쉽지 않다는 모순도 발견할 수 있었다. 여기에 깊은 영감과 성찰이 시간이었던 박은미대표와의 대화를 싣는다. 이 글을 통해 볼런티어에 관심을 지닌 청년들, 그리고 청년볼런티어에 관심을 갖고 있는 자원봉사센터 관계자들에게도 각자의 영감과 성찰이 생동하길 바란다.
# ‘니트생활자’, 서사의 시작
난희
니트생활자에 대한 소개를 부탁드려요.
은미
니트생활자는 무업(無業)기간을 보내는 청년들이 고립되지 않고 사회적으로 연결될 수 있도록 커뮤니티를 운영하는 사단법인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난희
‘고립되지 않는다’, ‘커뮤니티를 형성한다’ 이런 개념이 니트생활자의 주요 지향점이군요. 이런 것을 추구하는 법인을 만들게 된 이유가 뭘까요?
은미
저도 그런 무업기간을 여러 번 보냈거든요. 그러다 보니 무업기간이 되었을 때 사회적으로 굉장히 단절되고 고립되는 경험들이 계속 쌓여가는 거예요. ‘근데 왜 이런 기간에는 이런 사람들을 위한 지원이나 서비스같은 게 없을까?’라고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우리가 흔히 말하는 백수들이 다 혼자 집에서만 시간을 보내게 되고, 본인 잘못 때문에 본인의 능력 때문에 자신이 무업기간을 보낸다라는 생각을 많이 하잖아요. 그래서 그런 사람들을 모아서 같이 만나서 어떤 고민을 하고 있는지, 어떤 미래를 기획하고 있는지 등의 얘기를 해보면 좋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그렇게 커뮤니티 활동을 시작하게 됐고 그게 아주 신기하게도 지금까지 이어져서 2019년도부터 5년째 커뮤니티로 운영이 되고 있어요.
난희
결국 자신이 고립될 수 있겠다는 위기감 속에서 이것을 사회적인 문제로 인식하고, 고립되지 않기 위한 노력을 사회적 연대의 방식으로 접근한 거네요.
박은미대표는 니트족 당사자로서 느낀 문제의식과 감정, 욕구들을 개인적인 범주로 가두지 않았다. 작정하고 살펴보니 박은미 주변에는 동시대를 살아가는 또 다른 ‘박은미들’이 제법 많이 있었다. 자신 외에도 자신과 유사한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을 하고 있는 우리 사회의 다수의 ‘박은미들’을 만나고 엮어 냈다. 이렇게 한 개인이 마주한 문제와 감성이 사회적 감수성으로 확장되면서 니트생활자는 5년째 운영 중이다.
# 개인적인 것과 사회적인 것, 그 경계를 넘나드는 경험 속에서 단단해지는 회복탄력성
난희
박은미대표를 비롯한 니트족이 느끼는 고립감과 위기감은 개인의 문제, 즉 개인의 역량이나 성실함이 부족해서 생긴 것으로 치부할 수는 없는 것이죠. 이것은 사회 구조적인 문제로 바라봐야 하지 않을까요?
은미
저희 커뮤니티에 들어오는 청년들의 경우에는 처음엔 개인적인 문제로 생각하고 많이 들어와요. 왜냐하면 내가 뭔가 부족해서, 내가 회사에 오래 못 버텨서, 참을성이 없어서, 아니면 내가 뭔가 효율적이지 못한 사람이라서... 이런 생각을 가지고 굉장히 힘들어하는 시간들을 보내다가 저희 커뮤니티를 알고 들어오게 되거든요. 그런데 여기에 들어오는 순간 본인들도 느끼는 것 같아요. 저희는 보통 한 기수에 100명 정도씩 커뮤니티가 운영이 되니까 ‘이게 나만 그런 게 아니구나!’, ‘내 개인적인 문제가 아니었구나!’, ‘저렇게 멋있는 사람들도 무업기간을 보낼 수밖에 없는 구조구나!’라는 것들을 들어와서 알게 되는 것 같아요.
그리고 저희가 이 커뮤니티를 운영하는 취지도 개인들을 변화시키기 위해서 또는 개인의 문제로 보고 운영하는 것은 아니에요. 무업이라는 기간을 보내는 동안 사회적으로 단절될 수밖에 없는 구조가 문제라고 바라봤기 때문이에요. 우리가 무업기간 동안에도 사람들이 연결될 수 있는 커뮤니티를 만들면 누군가는 이 무업기간을 ‘안전’하게 있다 갈 수 있지 않을까, 그 시간에 혼자서 고립되지 않고 더 많은 정보가 오고 가고 더 많은 파트너를 만나서 무언가 시도해 볼 수 있고 이런 계기가 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으로 니트생활자 커뮤니티를 운영하고 있는 겁니다.
난희
‘동의합니다. 무업 상태를 겪고 있는 것이 한 개인의 게으름이나 나태함 때문으로만 볼 수는 없죠. 사회구조적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맥락에서 또 한 가지 질문이 있어요. 과연 성실하다는 것이 우리 사회의 미덕인가라는 물음입니다. 신자유주의 경제에서는 우리는 ‘성실해야 해’, ‘자신이 얼마나 효율적인가를 보여줘야 해’라는 생각이 강하잖아요. 심지어 사회적으로 가치 있거나 사회에 기여했다는 평가를 할 때에도 그 기여를 경제적 가치로 환산하거나, 경제적으로 얼마만큼의 부를 창출했다 등으로 판단하는 경향이 강하죠. 그런데 제가 보기에 니트생활자의 다양한 커뮤니티 활동들은 무업의 청년들에게 ‘돈을 버는 것만이 의미 있는 삶은 아니야’라는 생각도 해볼 수 있는 경험이 되는 것 같아요.
니트생활자에 참여하는 청년들은 실제 어떤 생각을 한다고 보시나요?
은미
참여자들도 커뮤니티 들어오면 처음엔 개인의 문제라고 생각했다가 구조적인 문제가 크다고 조금씩 인식하게 되는 것 같아요. 처음에는 다 ‘나도 뭔가 돈을 벌고 1인분의 삶을 살아야지’, ‘나도 생산적인 사람이 되어야지’라는 생각을 가지고 들어와요. 하지만 커뮤니티에 참여하는 동안 의식이 많이 전환이 됩니다. 청년들도 ‘꼭 돈을 버는 것만 중요한 일이 아니구나’, ‘다른 사회적인 활동들도 정말 중요하구나’라는 것을 서로를 보면서 의식하게 되는 것 같고, 그런 의식들이 자신의 진로 고민하고 진로를 찾아가는 데 조금 더 도움이 된다고 생각해요.
기존의 방식으로 취업을 하겠다고 생각하는 청년들은 오로지 그냥 취업 관련된 그 한 가지 목표만 보고 가잖아요. 근데 여기 커뮤니티에 와서 다양한 사람들의 모습을 보고 생각을 듣게 되면 자신이 취업을 준비하는 과정에 있어서도 폭넓게 진로를 고민할 수도 있고, 무업기간이 쓸모없는 기간이 아니라 많은 경험을 할 수 있고 많은 시도를 해볼 수 있는 시간이라는 것을 알게 되죠. 여러 가지 시도가 자신의 진로로 연결되고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 같아요.
#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연결, 연결, 그리고 또 연결
니트생활자에서 이루어지는 활동들
1. 니트컴퍼니
니트컴퍼니는 ‘백수들이 운영하는 가상 회사’이다. 건물, 월급, 사업자는 없지만 회사놀이를 통해 무업기간을 전환의 기간으로 보낼 수 있도록 서로를 응원하고자 니트생활자 플랫폼에서 니트컴퍼니, 즉 니트족이 출근하는 회사가 운영되고 있다.
니트컴퍼니는 무업기간에 빠지기 쉬운 무기력을 함정을 예방하는데 초점을 둔다. 매일매일 온라인으로 출근 체크를 하고, 스스로의 루틴을 만들어 무언가를 한다. 그리고 사내클럽도 독려하고, 봉사활동도 한다.
2. 우주선
니트컴퍼니에는 사원들이 자유롭게 모이는 사내클럽들이 많다. 사내클럽의 명칭은 ‘우주선’, 우주선을 만들고 운영하는 리더를 ‘캡틴’이라 부른다. 모임에 대한 아이디어가 있는 사람들이 캡틴과 부캡틴이 되어 우주선 발사계획을 세우면 관심 있는 사람들이 ‘크루’로 참여한다. 우주선의 비행이 시작되고 종료하기까지 비행기간, 운영방법 등의 모든 것은 캡틴의 자발적인 동기와 아이디어로부터 출발하여 자발적 참여자인 크루들에 의해 완성된다.
활동에 참여한 소감은 온라인 ‘탑승 후기’를 통해 공유한다. 탑승 후기를 보면 얼마나 모임에 진심이고, 즐거웠는지를 알 수 있다. 크고 작은 모든 우주선들은 하나하나가 크루들에게는 진심이고, 기꺼운 도전이고, 함께하는 경험이다.
난희
다양한 만남과 경험이 가능한 니트생활자의 활동들을 좀 더 구체적으로 소개해 주세요.
은미
무업기간에 있는 청년들은 경제적인 활동을 하지 않는 경우가 많아요. 니트생활자에서 무업기간을 보내는 청년들이 많이 하는 활동은 자기 돌봄이든가, 여러 사회적인 활동이든가, 아니면 자기 주변 사람들을 위한 돌봄 등을 하고 있어요. 자기가 하는 활동들이 당장 돈이 되는 활동은 아니지만 내가 뭔가 기여하고 싶은 바람들을 실천해 가는 모습들을 많이 봐요.
예를 들면 봉사활동들을 같이 간다든가. 자신처럼 뭔가 고립돼서 되게 힘든 경험을 하는 청년들을 도와주기 위한 모임을 운영하든가, 아니면 자신들이 상담 창구를 열기도 하고, 이런 힘든 시기를 보내는 청년들하고 같이 연대해서 이 시기를 잘 극복해보자는 취지의 활동을 하기도 해요. 자신뿐만이 아니라 타인들을 위한 활동들을 굉장히 많이 하는 모습들을 볼 수 있어요.
니트생활자에서는 니트컴퍼니를 운영하고 있는데 니트컴퍼니는 100일 동안 100명 정도의 규모로 운영되는 가상의 회사놀이입니다. 니트컴퍼니에 참여했던 사원들이 각자 여러 가지 사내클럽을 만들어 운영하는데 정말 다양한 모임들이 생겨요. 그 중 니트컴퍼니 용산점 참여자들이 만든 사내클럽 중에 ‘줠사세’라는 모임이 있었는데 ‘줠라 사소한 것이 세상을 바꾼다’라는 구호를 내걸고 만든 모임이에요. 타인에게 친절을 보이는 것, 예를 들어 자리를 양보하거나, 쓰레기를 줍거나, 아니면 누군가가 놓고 간 물건을 찾아준다거나 이런 작은 행동들로 사회가 바뀐다고 믿고, 같이 활동으로 해보는 거죠. 사실 무업기간은 이런 활동을 더 많이 해볼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해요.
난희
그렇다면 무업상태에 있는 청년들이 타자를 위해, 사회를 위해 ‘줠사세’와 같은 활동을 하는 계기는 뭘까요?
은미
사실 사람은 누구나 그런 마음들이 있는 것 같아요. 근데 아무래도 무업기간에 혼자 고립되어 있다 보면 사실 자기 문제에 굉장히 매몰이 되기 때문에 타인을 생각할 여유가 없죠. 왜냐하면 당장 내가 뭘 해야 할지 모르겠고 하루하루 자신이 너무 생산적이지 못한 것 같아서 괴로운 상태에 머무르잖아요.
타인까지 생각할 수 있는 여유가 없다가 커뮤니티에 들어오게 되면서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게 되고, 자신을 지지해 주는 사람들도 만나게 되고, 또 나 같은 사람들이 이렇게 많다는 것도 알게 되면서 심리적으로 안정감을 느끼게 되죠. 이런 환경에서 사람들과 교류하는 과정에서 ‘이거 해볼까’, ‘저거 해볼까’ 하는 동력이 생기는 것 같아요. 그러다 보면 청년들이 자신에게 필요한 것을 찾기보다는 누군가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활동들을 더 많이 찾아 하더라고요 원래는 이렇게 뭔가 기여하고 싶은 마음들이 마음속에 있었지만 사실 그럴 수 있는 기회나 계기가 없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싶네요.
난희
‘줠사세’같은 활동들이 자발적으로 만들어지는 거잖아요. 아이디어는 모두 청년들 사이에서 나오는 거죠?
은미
그렇죠. 저희는 이거 해라, 저거 해라라고 얘기하지 않거든요. 그냥 본인들이 원하는 활동들을 만들게끔 장만 열어주는 건데 타인을 위한 활동들을 정말 다양하게 많이 만들어내더라고요.
난희
그러면 그러한 장을 만들 때 그 장을 만드는 방법이나 원칙 같은 것, 이른바 니트생활자만의 기준 같은 것이 있나요? 아니면 활동의 방향을 제시한다든가 하는 거요.
은미
없어요. 없어요. 저희는 그런 제약 같은 걸 두진 않아요. 그리고 ‘모임을 열어 보세요’라고 하는 거지 ‘이런 모임을 여세요’ 이렇게 제안하지 않거든요.
쉽게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열어도 되고, 내가 평상시에 혼자 잘 안 됐던 부분들이 있어서 누구랑 같이 해보기 위해서 모임을 열어도 되고. 모든 것은 자율성에 맡기기 때문에 더 창의적이고, 되게 재미있고, 다양한 모임들이 많이 나오는 거라 생각해요.
난희
그렇다면 ‘줠사세’라는 모임은 어떻게 만들어 진거죠?
은미
저희가 운영하고 있는 니트컴퍼니(일명 가상의 회사놀이) 용산점의 사원들에게 사내클럽을 열어보시라고 제안했더니 여러 가지 모임들이 생겼어요. (다양한 모임은 니트생활자 홈페이지 닛커넥트 (https://neetconnect.kr) 에 들어가면 볼 수 있다.) 그 중하나가 ‘줠사세’입니다. 한 명이 뭔가 기획을 하고, 한 명이 이미지 포스터 같은 것을 만드는 등 역할을 분담해서 모임을 만들었어요. 모든 모임은 누군가 모임을 열면 거기에 원하는 사람들이 참여하는 구조로 되어 있어요. ‘줠사세’는 일곱 명이 참여해서 일주일 정도 운영됐어요. 참여자들 소감이 궁금하시면 홈페이지에서 탑승후기
(https://neetconnect.kr/meet/tv3
eKHWVnS/review#view-menu)를 보실 수 있어요.
‘줠사세’ 인사이트
수많은 우주선(니트컴퍼니 사내클럽을 지칭하는 말) 중 하나인 ‘줠사세’. ‘줠라 사소한 것이 세상을 구한다’는 구호를 건 ‘줠사세’의 모집 공고문에는 ‘매일 하루에 한 번씩 세상을 구하고 칭찬 받으실 분을 급구’한다는 말과 함께 아래와 같은 ‘시시콜콜’한 내용들이 덧붙여 있다.
앞 사람을 위한 문손잡이 잡아주기 OK!
길거리의 담배꽁초 주워서 쓰레기통에 넣기 OK!
버스에서 자리 양보하기 OK!
채팅방에서 칭찬하기 OK!
새삼 하찮고 사소하고 작아 보이지만
누군가를 위한 당신의 상냥함과 용기로
이 세상에 평화가 찾아옵니다
이 모집 공고문은 우리 각자에게 내재되어 있는 상냥함을 ‘툭’ 건드린다. ‘하찮고, 사소하고, 작아 보이는’ 상냥함으로 표현했지만, 퍽이나 따듯하고, 애틋한 느낌을 준다. 그리고 작은 용기를 내는 행위가 결국 평화를 만들고야 말 것이라는 신념을 단 일곱 줄의 글귀로 아무렇지 않다는 듯 전하고 있다. 참으로 대단한 내용을 말이다.
1. 모임 소개와 공고
모임에 필요한 준비물은 상냥함 1g과 용기 1g이라니! 참여에 따른 진입장벽이 없다. 그리고 모임 참가자의 역할은 ‘총 5일 동안 매일 24시간 이내에 채팅방에서 세상을 구한 사진(선택)을 올리고, 한 줄 이상의 일대기(필수)를 기록’하는 것이다.
자원봉사센터의 직원들은 어떻게 하면 가볍고 경쾌하게 일상에서 이루어지는 자원봉사활동들을 북돋울 수 있을지, 마이크로 볼런티어를 활동인증 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지 찾고 있다. 또한 자원봉사자들이 참여한 활동의 의미를 살리면서 서사를 남기는 활동의 기록 방법을 고민 중이다. ‘줠사세’의 활동과 참여방법은 이러한 자원봉사센터의 직원들에게 여러 가지 측면에서 좋은 사례가 된다.
2. 탑승 후기
참여자들의 탐승 후기는 매우 감동적이다.
“생각치도 못한 부분에서 선행할 수 있는 부분을 알려주기도 하고. 그리고 내가 안했을 때는 누군가가 나에게 그렇게 해줬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사소한 것이지만 사소해서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그냥 지나치기 쉬운 것 같아요. 그리고 이 사소한 것으로 세상을 구한다 이 세상에 저도 포함되어 있는 것임을. 누군가에게 선행을 했을 때 저도 기분이 좋아지는 경험을 많이 했어요.
줠사세가 끝나도, 더 이상 인증을 하지 않아도, 누군가 칭찬을 하지 않아도, 스티커를 안 붙여도 선행을 계속 하는 사람이 되고 싶게 만드는 클럽”
이 짧은 후기에는 (거창하건 거창하지 않건) 한번이라도 제대로 된 자발적인 볼런티어의 경험이 우리들의 삶에 왜 필요한지 이유가 담겨 있다.
난희
이런 모임이나 모임을 여는 사람을 칭하는 호칭이 있나요?
은미
모임을 여는 사람을 캡틴이라고 불러요. 사내클럽은 ‘닛커넥트’라는 플랫폼에서 만들어지고 운영되는데 이 플랫폼에 캡틴이 이제 ‘우주선’을 띄운다고 얘기해요. 사내클럽 모임이 우주선이거든요. 캡틴이 우주선을 띄우면 원하는 ‘크루’들이 참여해서 모임이 운영이 되고, 운영이 끝나면 후기도 남길 수 있도록 되어 있어요.
이 플랫폼 안에서 정말 다양한 모임들이 열리기도 하고, 또 그 모임을 통해서 여기저기서 사람들끼리 만나면서 많은 교류가 이루어지다 보니까 관계망도 되게 촘촘하게 만들어지기고, 한 개인이 만나는 다양한 그룹들이 생기는 거예요.
난희
획일적인 관계망이 아니네요.
은미
그렇게 만나다 보면 이 사람하고도 어떤 모임들을 열어보기도 하고, 또 저 사람하고도 어떤 프로젝트를 해보기도 하고, 어떤 사람하고는 개인적으로 친분이 두터워져 평상시에도 만나는 등 다양하게 관계망들이 생기는 것 같아요.
# 정해 놓은 테두리를 넘어서, 더 넓은 바다에서 자유롭게
난희
이렇게 재미있고 기발하게 좋은 일을 하는 우주선들이 닛커넥트에 많이 있는데 혹시 이런 활동을 1365자원봉사포털에 올린다던가, 자원봉사라는 이름을 붙인다던가 하나요?
은미
청년들이 그렇게 안 하죠. 거기에 ‘자원봉사’라는 키워드가 붙으면 어떻게 생각할지 잘 모르겠는데... 전혀 생각해 보지 않았네요. 느낌이 좀... 관심을 안둘 것 같아요.
난희
아니면 ‘우리가 했던 활동을 자원봉사로 인증이라도 받겠다’라든가, ‘시간을 이렇게 적립해 놓겠다’등의 생각들은 해본 적이 없나요?
은미
그러면 좋겠지만 그러려고 한 게 아니어서 크게 생각을 안 해봤을 것 같아요. 시간을 적립해서 입사할 때 쓰지 않는 이상은 굳이 그 번거로운 절차를 통해서 1365에 가입한 다음에 그 양식에 맞춰 실적을 보내야 하는 거잖아요. 실적은 보낸 다음에 이거 입력해 주세요라고 하는 게 너무 많은 절차를 필요로 한다는 거죠. 그리고 자원봉사센터 직원 분들은 분명히 물어볼 것 같아요. ‘이게 자원봉사인가요?’라고. 센터 직원분들이 생각하는 자원봉사의 바운더리가 있잖아요. 그럼 ‘활동을 어떻게 체크할 거예요?’, ‘시간을 어떻게 계산해요?’ 다 이러실 것 같거든요. 왜냐면 ‘제가 오늘 버스 타고 자리를 양보했어요’라는 등의 사소한 선행 등을 몇 분으로 계산할지 등등 직원분들 입장에서는 애매한 부분이 있을 것 같아요. 실적하고 연결되니까.
난희
가장 좋은 건 활동 인증이 됐든, 시간 인증이 됐든, 인증을 안 받든 상관없이 의미 있는 일을 하는 거죠.
은미
사실 그게 목적인 거잖아요.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줠사세’라는 말에 ‘줠사세 봉사활동’이라고 ‘자원봉사’를 붙이는 순간 왠지 올드한 느낌이 드네요.
난희
그런 느낌이 든다는 것은 자원봉사센터를 비롯한 자원봉사전문가들이 성찰할 부분인 것 같습니다.
여하튼 니트생활자 청년들이 하고 있는 타자를 위한 다양한 활동들이 저는 상당히 의미 있었어요. 그런 활동을 할 수 있었던 계기 중에 하나가 ‘일단은 연대한다’ 그리고 ‘그 안에서 여유로움을 찾는다’ 그래야 서로 뭔가 모여서 수다를 떨거나, 논의를 하다가 그 안에서 의미 있는 일을 해보자는 제안이 자연스럽게 나오게 되는 거네요. 그리고 이것은 인간이 기본적으로 갖고 있는 본성인 것 같다라는 얘기를 해주셨는데...
은미
맞아요. 그게 발휘가 되게끔 하는 기회가 생기는 거죠. 자신이 심리적으로도 안정이 되고, 나를 지지해 주는 사람들이 생기는 환경이 만들어지면서 ‘뭔가를 해봐야지, 근데 뭘 할까’ 그리고 이왕이면 ‘뭔가 기여할 수 있는 걸 하고 싶은데’ 이렇게 흘러가는 것 같아요.
난희
그럼 니트생활자에 오는 청년들 외에도 이런 분위기가 확산이 되려면 우리 사회에 어떤 것이 뒷받침 되어야 할까요?
은미
시간이 필요한 것 같은데.. 청년들이 사실 저희 커뮤니티 오는 청년들도 일하고 있는 청년들과 별반 다르지 않다고 생각하거든요. 근데 여기 오면 가면을 벗고 사람들을 만나고, 일터로 가면 다시 가면을 쓰게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자기를 있는 그대로 드러내지 못하는 사회 분위기죠.
사회에 기여하고 싶고 뭔가 환경문제에도 노력하고 싶은 마음이 있어도 어디에 가서 뭔가 한마디 제안을 했을 때 ‘너 이런 걸 왜 해?’ 이런 피드백을 듣게 되는 것이 무서우니까 자기를 드러내지 않고 감추려는 게 크지 않을까요.
니트생활자처럼 본연의 모습으로 있어도 안전하다고 느끼는 커뮤니티가 우리 사회에 많이 마련되면 자연스럽게 사회에 기여하고 싶은 마음들이 들 것 같아요. 사실 청년들도 그렇고 경제활동을 하고 있는 모든 사람들의 삶이 굉장히 피폐한 것 같아요. 여유가 없는 거죠. 당장 먹고 살기 바쁘고, 왔다 갔다 출퇴근하기 너무 바쁜데, 지금 자기 살기도 너무너무 버거운데 타인을 생각할 여유가 있을까 그런 생각이 드네요. 뭔가 너무 경쟁하고 성과를 내야 하는 사회 전체적인 분위기가 바뀌지 않으면 자연스럽게 그런 마음들이 생기기까지는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을까요.
사람들이 모일 시간도 없고, 모일 공간도 없고. 그리고 대부분의 커뮤니티들은 목적성을 가지고 있다 보니까 자신이 취미가 없거나 성장하고 싶은 욕망이 없다면 갈 수 없는 커뮤니티도 굉장히 많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러니까 목적성이 없는, 정말 그냥 사람 대 사람으로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커뮤니티가 많아져야 되지 않을까요.
요즘엔 커뮤니티가 돈 내고 가잖아요. 내가 돈이 있어야지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구조니까 그것도 또 하나의 장벽이 되는 것 같고.
난희
그래서 말인데요. 니트생활자 청년들이 처음에 모일 수 있었던 동력이 뭘까요? 무업상태에 있다 보면 자발적 혹은 비자발적으로 은둔상황에 될 수 있을 것 같은데 어떤 계기로 밖으로 나와 모이게 됐을까요?
은미
그것은 되게 간단한 것 같아요. 저도 많이 경험을 했지만 사람은 사회적인 동물이잖아요. 혼자 있기보다는 뭔가 사람들하고 적절히 만나고 싶고, 새로운 사람 만나고 싶고. 그리고 혼자 일상을 보내면 누가 이제 간섭하거나 제어하지 않기 때문에 굉장히 불규칙해지기도 하고 흐트러지잖아요. 그럼 사실 자신이 스스로 뭘 해봐야겠다고 계획했던 것들을 추진할 수 없는 하루하루를 보내게 되거든요. 니트생활자는 니트컴퍼니처럼 루틴을 만들 수 있도록 도와주니 딱 그런 개인들이 가지고 있는 어려움을 해소해 주는 부분들이 있어요.
그리고 아무래도 사회적인 신분이나 지위를 가지고 모이는 게 아니다 보니 자기 본연의 모습으로 관계를 맺으니까 조금 더 타인에게 다정해지는 부분들도 있는 것 같아요. 그런 부분들이 잘 맞아떨어져서 청년들, 무업상태에 있는 청년들이 쉽게 모이고 또 계속 모이는 거 같아요.
#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청년들에게, 그리고 우리 사회의 자원봉사센터에게
난희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나라의 청년들은 어떤 존재라고 생각하세요?
은미
괴롭고 우울하고 슬프다. 그렇게 느껴져요. 왜냐하면 너무너무 치열하게 살더라고요. 진짜 쉬지 않고 살아요. 잘 보면 무업기간에도 다 쉬지 않고 뭔가를 부지런히, 열심히 하거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회가 없고, 아무리 월급을 받아도 돈이 모여지지 않고, 내가 집을 살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더 나은 회사로 갈 수 있는 보장도 없고. 모든 게 다 너무 기회가 없는 느낌이에요. 그러다 보니 자기 스스로는 다 열심히 공부하고 많은 시도들을 해왔는데 좌절되는 것들이 너무 많으니까 거기서 오는 괴로움, 무기력감 등이 큰 것 같아요.
그런데 어쨌든 저희는 무업기간을 보내는 청년들을 많이 만나잖아요. 이 청년들을 보면서 기존 세대보다 낫다는 생각 많이 해요. 훨씬 더 뛰어나고, 능력 있고, 잠재력이 많아요. 기회만 있으면 얼마든지 자기가 가지고 있는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사람들이구나라고 정말 많이 느껴요.
청년들은 저희 커뮤니티에 들어와서 호혜를 경험하게 되고, 자기도 그렇게 호혜를 베푸는 사람이 돼야겠다고 많이들 얘기해요. 이 사람들이 이 시간이 지나고 성장해서 정책을 결정하는 그런 자리에 갔을 때, 그 시기가 됐을 때 우리 사회의 판이 조금은 바뀌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하고요.
난희
그럼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청년들에게 어떤 말씀을 해주고 싶으세요?
은미
어렵네요. 그냥 뭔가 지금 시대를 살아가느라고 너무 수고가 많다 이런 얘기를 해주고 싶기도 하고. 한 번쯤은 그래도 좀 주변 사람들을 둘러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모두가 항상 다 좋은 일만 있는 건 아니고 누구나 삶이 오르락내리락하는 거잖아요. 삶이 그랬을 때 커뮤니티가 필요하다면 여기로 오라고 하고 싶어요. 수 없는 니트가 되었을 때, 사람들과 연결고리가 끊어졌을 때 이런 곳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 그래도 좀 도움이 되지 않을까요.
난희
마지막 질문인데요. 대부분의 자원봉사센터들은 자발적인 청년조직이 많아지길 바라고 있어요. 대표님은 수년간 자발적인 청년 커뮤니티를 지원해 온 경험을 갖고 계시니 조언을 부탁드립니다. 지역의 자원봉사센터가 어떤 역할을 하면 좋을까요?
은미
물론 정부 조직들은 항상 실적을 내야하고, 목표를 달성해야 되니까 정부나 지자체 같은 공적인 기관에서는 사실 커뮤니티를 운영한다는 게 어렵다고 생각해요. 공적인 영역과 민간 영역의 역할을 확실히 나눠서 민간이 그 역할을 더 잘할 수 있게 공적인 영역에서 도와주는 게 상당히 중요합니다.
자원봉사센터들은 지역에서 커뮤니티를 만들 수 있도록 독려하고, 커뮤니티가 지속될 수 있게 지원해 주면 좋겠어요. 자원봉사센터는 기본적으로 공간도 있고, 사업비도 있고, 인건비가 나오잖아요. 그러면 사업에만 집중할 수 있는 구조인 거잖아요. 지역에 있는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이 모일 수 있는 그런 구심점 역할, 커뮤니티를 활발하게 해줄 수 있는 역할을 센터에서 해주면 좋겠어요.
참조